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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사람 상대하는 법
케이디 크루즈
“힘든 사람은 어떻게 상대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힘든 사람을 대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고찰은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것이다. 힘든 사람 상대하는 법을 터득한다면 가정, 교회, 직장에서 맺는 관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인간관계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타인을 뜯어고치거나 조종할 수 없다는 점을 늘 명심해야만 한다. 따라서 본 기사에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힘든 사람 대하는 7가지 실제적인 방법을 탐구하고자 한다.
1. 자기 성찰
힘든 사람을 대할 때 필요한 첫 단계는 거울을 보며 ‘내가 그 어려운 사람은 아닐가?’라고 자문해 보는 것이다. 거짓말에 관한 저술가이자 전문가이자 저자인 패멀라 마이어에 따르면 우리는 하루에 10번에서 200번 정도 자신을 속인다.1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라는 말씀을 읽어 보았을 것이다. 자기기만의 일반적인 형태 중 하나는 투영(投影, projection)이다. 투영은 자신에게 있는 부정적인 특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남에게서 찾는 것이다. 누군가를 까다롭게 여기는 이유는 자신의 까다로움을 그에게 투영했기 때문일 수 있다. 심리학자로서 나는 종종 상담을 진행할 때 내담자들이 투영하는 모습을 본다. 그들은 배우자, 자녀, 직장 동료, 목회자 심지어 고객 서비스 담당 직원이 어렵다고 불평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그 어려운 사람인 경우가 많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3절에서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설명하신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왜 너는 형제를 힘든 사람으로 낙인찍으면서 정작 자신이 힘든 사람인 줄은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5절에서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라고 조언하신다. 먼저 자신의 문제부터 손질한 다음 남의 문제를 손대라는 것이다. 시편 139편 23, 24절처럼 기도하라.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2. 책임지기
사람들은 종종 ‘저 사람이 나를 화나게 했다.’라거나 ‘그들이 나를 건드렸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사실이 아니다. 그들이 당신의 감정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 누구도 당신에게 어떤 것을 느끼게 ’만들 수는’ 없다. 남을 탓하기보다 자기 반응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이 사람 때문에 내 안의 무엇이 자극받았지?’라고 물어보라. 감정적으로 가장 성숙한 사람이란 자기를 인식하고 자신의 책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설령 누군가를 힘든 사람으로 여기는 당신의 판단이 옳을 때조차도 당신이 감당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
힘든 사람이 나를 자극할 때는 그에게 반응하여 그들이 힘을 얻게 하지 말라. 반응하지 않으면 상대는 무력해진다. 내가 어렸을 때 오빠가 나와 언니를 간지럽히곤 했다. 독자들도 짐작할 수 있듯 언니가 과하게 반응할 때마다 오빠는 더 간지럽혔다. 이 모습을 지켜본 뒤로 나는 남들이 나에게 간지럽냐고 물어도 아니라고 대답하든지 간지럽힘을 당해도 웃거나 몸을 피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반응을 거부하니 상대방은 맥을 잃었다. 힘든 사람을 상대할 때도 똑같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 즉시 혹은 나중에 되씹거나 화내는 방식으로 반응하여 그들에게 힘을 실어 주지 말라.
3. ‘힘든 사람’의 재정의
힘든 사람을 상대할 때는 당신이 그에게 붙여 놓은 꼬리표를 제거하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낙인찍기란 한 가지 특성이나 행동으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다. 오늘날은 ‘나르시스트’라는 꼬리표가 유행어처럼 흔하다. 어떤 사람이 나르시시즘의 특성을 보인다고 해서 그에게 ‘나르시스트’라는 꼬리표를 붙인다면 나르시시즘을 그의 전반적인 성격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이 좋아하는 행동이다. 낙인찍기는 그 사람의 운명을 그 낙인에 국한시키는 선고가 되어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힘든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도 똑같다. 그들은 ‘그래, 나 힘든 사람이야. 어쩌라고?’ 하는 식으로 생각할 것이다.
꼬리표는 또한 인종(‘흑인’ 대 ‘백인’), 종교(‘보수’ 대 ‘진보’), 정치적 신념(‘공화당원’ 대 ‘민주당원’) 등으로 사람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를 ‘힘든 사람’으로 낙인찍을 때도 분열이 생긴다. 우리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자문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 당시에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낙인찍기에 맞서셨고 사람들의 마음을 보셨다(갈 3:28).
“여호와께서 보시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않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여호와는 마음을 보신다.”(삼상 16:7; 고후 5:16). ‘그들(힘든 사람)’ 대 ‘우리(편한 사람)’라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 그분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힘든’ 죄인임을 인식하며(롬 3:23) 우리가 분에 넘치게 받은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도 똑같이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의 본을 따라 ‘힘든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지금부터 당장 제거하자. 본 기사에서는 이제부터 ‘힘든 사람’을 ‘은혜 대상자’로 표현하겠다.
4. 소통과 경청
심리학자로서 내가 얻는 특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그들의 삶 이면을 들여다보면 심판과 좌절 대신 공감과 연민이 내 안에서 솟아오른다. 나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일 들을 기회가 없는 독자라도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질문하며 경청할 수 있다. 그들을 심판하지 말고 끈기 있게 들으라. 야고보서 1장 19절 말씀처럼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비판적 사고에 관한 저술가 보 베넷은 “힘든 사람을 다루는 경험을 많이 쌓고 싶다면 아이를 가지라.”2고 말했다. 은혜 대상자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정서 및 사회 기술이 미성숙한 경우가 많다. 우리도 은혜 대상자를 귀한 아이들처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우리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그들도 성장을 이어 갈 수 있다. 하나님의 눈에는 모두가 아이들이며, 하나님은 아이들이 자기에게 오기를 바라신다.
소통하고 귀 기울여 들으면 사람들의 약점에 공감이 일 뿐 아니라 그들의 강점을 인식할 기회도 생긴다. 예수님은 사람들 속에서 약점과 강점을 모두 인식하셨다. 그분은 그들의 상처를 불쌍히 여기셨고 동시에 그들 안에 있는 선함을 키워 주셨다. 우리도 은혜 대상자에게 그와 같이 해야 한다. 대인 관계가 힘든 사람도 사역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에는 모두가 필요하다(고전 12:12-27).
5. ‘힘든 것’ 정의
꼬리표를 붙이지 말고 귀담아들으면 관계에 장해가 되는 문제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상호작용에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신체적 또는 심리적 장애를 겪는 사람도 있고 성격, 생활 방식, 신념 체계나 문화가 우리와 다른 사람도 있다. 이러한 요인 중 무엇 때문에 상호작용이 힘든지를 파악하면 적절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만능 해결책은 없다. 여러 변수가 존재한다. 은혜 대상자가 가족이든 교인이든 권력자든 낯선 사람이든 관계가 중요하다. 또 어떤 목적으로 얼마나 자주 만나는 사이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상대가 고객 서비스 담당 직원이고 주목적이 구매 물품을 반품하는 것이라면 자주 만나는 상사를 대할 때와 접근 방식이 매우 다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은혜 대상자와 어떤 상호작용이 가능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들이 응할 수 있는 범위의 요구 사항인가? 은혜 대상자의 행동이 바뀔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을 때 사람들은 종종 실망한다. 은혜 대상자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여 그에 맞는 기대치를 설정하라.
6. 경계를 정하라
경계는 은혜 대상자와의 관계는 물론 모든 관계를 다루는 데 필요하다. 성경에서 경계에 대한 훌륭한 지침은 하나님의 속성에 나타나며 그것은 공의와 자비의 균형이다(시 85:10; 미 6:8; 마 23:23). 인간의 사랑은 종종 불균형하게 나타나며, 우리는 하나를 강조하고 다른 하나는 소홀히 하기가 쉽다. 그리스도인 대부분 은혜 대상자를 다룰 때 은혜 쪽으로 너무 치우쳐(경계선을 느슨히 하거나 없애 버리는 식으로) 어느 순간 한계를 넘어 ‘더는 못 참겠다.’고 느끼게 되면 완전히 공의 쪽으로 돌변하여 상대를 삶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엄격한 경계 설정을 한다. 공의와 자비의 균형은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경계를 설정할 때는 자신의 편향된 판단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라.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공의와 자비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하며, 타인을 돌보는 것과 자신을 돌보는 것 사이에서도 균형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를 위한 지침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1)는 말씀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규칙적이고 일상적인 자기 관리를 하지 않으면 동정 피로와 탈진이 불가피하다. 예수님조차도 당시의 은혜 대상자를 대할 때 자기 관리를 위한 경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예, 논쟁하는 제자들, 비난하는 지도자들, 상처받아 도움이 필요한 이들). 예수님은 종종 무리에게서 물러나 광야(눅 5:15-16), 산(마 14:23) 또는 외딴곳(마 14:13; 막 1:35)에서 시간을 보내셨다. 또 엘렌 화잇이 지적하듯 “예수님은 베다니의 나사로 집에서 지친 인간 본성이 필요로 하는 안식을 자주 찾으셨다.”3 경계를 설정하고 전달하는 것은 전투의 절반일 뿐이다. 더 쉽지 않은 나머지 절반은 경계를 시행하고 강화하는 것이다.4
7. 조언을 요청하라
다양한 은혜 대상자에 대한 만능 해결책은 없으므로 지원과 조언을 구하게 될 것이다. 우선 하나님께 조언을 구하라. 기도, 성경 공부, 경험을 통해 성령께서 이끌어 주실 수 있다. 둘째로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라.
중학교 1학년 때 친한 친구가 자해 행위와 자살 충동 등을 겪고 있다며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이 비밀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의 고통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 나도 우울증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알아차린 언니가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이 터지며 눈물이 쏟아졌다. 언니가 건네준 조언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너는 친구의 고통과 삶에 책임이 없어.” 언니는 내가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을 인정해 주었고 동시에 나를 돌보는 경계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마치 예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케이디, 네가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을 알아. 하지만 그의 구세주는 나지 네가 아니야. 그를 나에게 맡기렴.” 그 뒤 나는 신뢰할 수 있는 학교의 선생님에게 친구의 어려움을 이야기했고, 내 어깨에서 큰 짐이 덜어졌을 뿐 아니라 친구의 문제도 잘 해결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도와주라고 부르시지만 우리가 그들을 온전히 책임져야 할 필요는 없다. 할 수 있는 것을 최선껏 다한 뒤 나머지는 하나님과 다른 이들에게 맡기라.
결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원칙에서 얻은 능력을 힘입어 은혜 대상자를 상대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괴롭힘을 당하고 종종 외톨이였다. 이러한 힘든 시절을 겪으며 나는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소외된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생겼다. 대학원에서는 가장 도전적인 우정을 경험했다. 교인들은 공적인 모임에서 그를 잘 참아 주었지만 누구도 그의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나도 때때로 우리의 우정을 계속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인정한다. 어느 날, 이 친구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홀대당하고 버림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고 지금은 주변 사람들도 자신을 버릴 것인지 시험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케이디, 내가 너를 시험하고 밀어냈다는 걸 알아. 그런데도 넌 나를 떠나지 않았어. 너의 우정 덕분에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 네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넌 모를 거야. 이렇게 힘들게 해서 미안해. 더는 밀어내지 않는 방법을 잘 모르겠어.”
은혜가 더 필요한 사람과의 우정은 쉽지 않지만 매우 보람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그 소중한 친구를 아끼며, 친구와의 관계가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에 감사하고 있다. 남편은 종종 내게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큰 상을 받느냐는 얼마나 큰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이 치러진 만큼의 가치가 있는 존재다.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나를 통해 친구가 경험한 치유는 쉽지 않은 우정의 고통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 여러분도 은혜 대상자를 사랑하고 돌보며 치유하는 도전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 대상자를 다루고 사랑하는 데 필요한 인내, 연민, 은혜, 공의 그리고 사랑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1 See Pamela Meyer, Liespotting: Proven Techniques to Detect Deception (New York: St. Martin’s Press, 2011)
2 See, further, Bo Bennett, Year to Success: When it Comes to Success, There are No Shortcuts (Sadbury, MA: Archieboy Holdings, 2004)
3 엘렌 G. 화잇, 『하나님의 딸들』, 57. 목회에서 자기 돌봄에 관한 통찰력을 더 얻고 싶다면 『복음교역자』 제53장 ‘과로에서 오는 위험’을 읽으라.
4 경계에 관한 더 많은 통찰력을 얻고 싶다면 다음의 책을 참고하라. Henry Cloud and John Townsend, Boundaries: When to Say Yes, How to Say No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7).
케이디 크루즈(Ph.D.) 캘리포니아 오번에 있는 뷰티풀마인드 병원의 임상 책임자이자 공인 임상심리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