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쓴 "슬픈 타임머신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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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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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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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임중섭 목사 가족 ... 50년 한 품고 눈물의 작별인사
뱃고동 소리가 허공을 가르자 일행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일순 창밖을 향했다. 이렇듯 세 시간 남짓이면 닿을 거리를 반세기가 지나서야 밟을 수 있었으니 무심하게 지나간 세월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잠시 후면 그간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해 밤잠을 설쳤던 형님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설레임으로 교차되며 가슴을 저몄다.
드디어 466명의 남측 이산가족상봉단을 태운 현대 설봉호가 장전항에 도착하고, 방북에 따른 입국 수속과 절차가 마쳐졌다. 일행은 저마다 상기된 얼굴로 초조함과 기대감에 들뜬 표정이었다. 벌써부터 군데군데 손수건을 적시는 노인들도 눈에 들어왔다.
1일(수) 저녁 5시. 첫 단체상봉이 예정된 금강산 온정각 휴게소.
‘어떤 모습일까? 너무 시간이 흘러 서로가 알아볼 수는 있을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100명이 넘는 북측 이산가족들 사이에서도 형님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비록 청년의 기백은 온데간데 없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돌아왔지만 가냘픈 눈매와 호리호리한 체구에서 배어나오는 인자한 얼굴은 굳이 ‘림형섭’이라는 명찰을 보지 않고라도 예의 형님 모습 그대로였다.
순간, 울컥하며 끓어오르는 오열이 오남매의 뺨과 목을 적시고 있었다.
“형님...” “오빠...”
외마디 외침과 함께 50년 세월 만에 만난 남매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그토록 절절하게 고대하던 이야기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한동안 눈물을 삼키어야 했다. 금강산이 또 한번 50년 이별의 한을 담은 눈물바다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지난 1일부터 2박3일간 금강산에서 6.25때 헤어진 둘째형님 임형섭 씨를 상봉하고 돌아온 임중섭 목사 일행은 짧고도 아쉬웠던 방북기를 그렇게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다소 내성적이었지만 부드럽고, 사려가 깊었던 형은 반백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도 경남 함양의 고향길과 강변을 어린 동생들과 함께 맘껏 뛰놀던 옛추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또 그토록 사랑하던 어머니와의 기억 역시 또렷하고 분명하게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특히, 일제말기 손수 제작한 총기를 쌀자루에 넣어 독립군에 보내다가 발각되어 옥살이를 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확인했다.
그러나 옛 정을 회복하기에 50년 세월의 흐름은 이들 형제들을 너무나 상이한 체제와 사상 속에 가두어 놓고 말았다. 긴 군생활과 의식화로 형제는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상시 따라붙는 감시원 때문에 이야기도 자유롭게 하지 못한 채 더욱 경직되는 듯한 형님의 표정은 형제들의 가슴을 더욱 쓰리게 했다.
3일 오전 9시부터 1시간 동안 온정각 휴게소에서 가진 작별상봉을 끝으로 총 여섯차례의 상봉일정을 마무리하고 속초로 귀환하는 길, 임 목사와 다섯 남매는 그토록 애타게 찾던 그리운 가족과 혈육의 정을 나누고 돌아오면서도 왠지 편치 않은 마음이었다.
임 목사는 그러한 자신의 감회를 담담히 수첩에 기록해 나갔다.
이산가족 상봉 - ‘슬픈 타임머신의 여행...’
“우리 남매는 이번 여행에서 우리들의 느낌이나 감성이 50년전 형제가 함께 지내던 회상 속을 찾았다. 그리고 잠시나마 그때의 추억을 나누며 살다 왔다. 그러나 우리가 형님을 만나러간 땅은 비록, 북녘의 얼마 안되는 금강산 발치였지만 모든 것이 통제와 감시에 얽메인 듯한 ‘동토의 땅’이었고, 모든 환경이 열악하고 낙후된 5-60년대 과거로 회귀한 듯 했다. 더욱이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50년전의 형님은 어디로 가고, 그와 닮은 다른 어떤 이를 만나고 오는 듯한 이 찢어지는 아픔을 지울 길 없다. ... ...”
52년 만에 잃었던 형님을 만난다는 기대와 상봉의 기쁨, 그리고 짧지만 행복했던 감격과 재회의 눈물... 그러나 형제애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심한 통제와 열악한 북한의 실상은 돌아오는 길 내내 임 목사 일행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일행은 귀환 후 하루 속히 이 땅에 통일의 축복이 내려지길,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다시는 이러한 비극의 역사가 쓰여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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